배움 · 재료와 기법

먹, 물, 그리고 선지

종이와 나누는 대화로서의 그림
오승연 작 〈숨결의 풍경〉 (부분)
오승연 작 〈숨결의 풍경〉 (부분)

제 그림의 재료는 단순합니다. 한국 먹, 한국 채색, 그리고 선지(宣紙) 위에 올리는 진주빛 자개의 광택. 하지만 이 단순한 재료 안에 평생 배워도 다 못 배우는 깊이가 있습니다.

종이는 저항한다

선지는 먹을 특별한 방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서양의 캔버스처럼 순순히 받아 주지 않고, 조금 망설이며 번지고 스밉니다. 거칠어 보이는 붓질도 사실은 종이의 저항과 나누는 조심스러운 협상입니다.

종이는 저항합니다. 그 저항을 존중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곧 붓을 배우는 일입니다.

먹의 농담(濃淡)

먹은 검정 하나가 아닙니다. 물과 만나 수십 가지의 회색과 검정이 됩니다. 진한 먹, 마른 먹, 옅은 먹 — 그 사이의 미묘한 층을 읽는 눈이 동양화의 핵심입니다. 색을 쓰지 않고도 먹 하나로 안개와 바위와 소나무를 모두 그릴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여백을 두려워하지 않기

동양화에서 비어 있는 곳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개이고, 물이고, 하늘이고, 숨입니다. 처음 배우는 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여백입니다. 다 채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 것 — 그것이 오랜 수련의 시작입니다.

수업에서 저는 늘 말합니다. 잘 그리는 법보다 먼저, 종이와 먹과 물이 스스로 하는 말을 듣는 법을 배우세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나요? 스튜디오에서 직접 붓을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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